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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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방울 판소리의 중요성  

“쑥대머리” 와 나라사랑

판소리를 아는 사람치고 임방울(1904-1961)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 만큼 임방울은 우리의 판소리 역사에서 중요하고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피를 토하듯 한을 풀어내는 임방울의 판소리는 엄청난 위안과 힘이 되어 주었고 그 소리의 공감대는 우리민족의 결속을 다져주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쑥대머리의 음반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만주나 일본에서까지 폭발적으로 팔려 무려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니 그의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판소리의 보급과 대중화

그는 판소리의 보급과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호남에 많았지 전국적으로 보면 그리 많이 않았다. 그러나 그의 “쑥대머리”는 판소리를 전혀 몰랐던 사람들도 감동할 수밖에 없는 절창이었다. 그래서 그 소리를 통해서 판소리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늘었으니 모두가 임방울 명창의 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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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수준높은 성악예술로 승화

임방울 명창은 판소리를 수준 높은 성악예술로 승화시켰을 뿐만아니라 그 예술성을 지키는 일에도 솔선 수범하는 실천가였다. 일제를 살아가던 많은 판소리인들이 판소리를 버리고 소위 연극소리라고 하는 창극에 매달릴 때에도 임방울은 판소리를 고수하며 시골장터나 강둑에 판을 벌리고 소리를 할 정도로 판소리를 지키려고 노력한 명창이다.

그는 판소리에 대한 자부심과 결벽증이 있어서 녹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녹음을 남기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운 점이다. 그의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하고 더 많은 소리를 들어보기 원하지만 녹음자료가 많지 않으니 안타까운 노릇 아닌가?

한 시대를 풍미한 소리꾼이요 국창으로 이름을 떨쳤던 임방울은 그토록 훌륭한 판소리를 그의 가슴에 지닌 채 1961년 훌쩍 가 버렸다. 장안을 떠들썩하게 하며 흰옷 입은 장례행렬이 길게 길게 망우리로 향했던 그 장례식도 이제는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게 되었다.

  작은 임방울 정철호  

정철호의 학습내력

임방울 명창은 많은 제자를 기르지 않았다. 그에게 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웠다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나마 대부분 작고해 버렸다. 지금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제자가 정철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기능 보유자)씨이다. 정철호 명인은 14살 어린 나이에 임방울 명창을 수행하면서 4년간 수궁가. 적벽가 등을 사사한 바있다.

정철호 명인은 그 후에 다른 명창에게도 소리를 배우고 창극의 작곡자로 아쟁산조의 창시자로 창조적인 일에 매달려 많은 일을 했지만 임방울에게배운 판소리는 어린 나이에 배운 것이어서 지금까지도 다 기억하고있을 뿐만 아니라 임방울에게 배운 적벽가를 음반으로 내여 임방울유파 판소리를 보급, 임방울을 그리는 펜들에게 작은 임방울이라는 호칭을 받기도한 실력가이다. 정철호는 임방울에게 “목구성이 좋아 소리할 목”이라하며 제자로 받아주었고, 24세에는 제1회 남원명창대회에서 최고의 대상인 장원을 맏아 명창으로 알려진바 있다.

판소리의 보급과 대중화

지금 정철호는 임방울류 판소리를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으며 선생님의 유파가 계승될수 있도록 온갓 정열을 쏟고 있다. 국창 임방울 적벽가는 삼고초려가 없는 민 적벽가 이다 정철호은 스승 임방울선생에게 허락을 받고 보성에 있는 정응민 문화에서 적벽가 삼고초를 사사받았고 판소리고법은 국창 임방울의 수행고수 김재선문하에서 소리장단을 전수 받았다. 이 후 1996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철호 선생은 한갑득에게서 거문고를 사사받기도 했고, 1940년대에 세인이 다 아는 업적중의 하나인 <아쟁산조>를 창시 보급하여 우리 전통음악에 없어서는 안될 악기로 자리잡게 하였다. 그러나 아쟁산조 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있는 점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한 정철호는 창극 작창에 있어 국악예에 독보적으로 많은 작품을 하였으며 특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돌아가신 열사들의 일대기를 국악으로 작곡하여 국악의 저변확대에 큰 공을 세운 예인이기도 한다.

  임방울 소리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의 필요성  

국창 임방울선생 기념문화재단

이대로 몇 해가 더 흐르고 10년 20년이 지나면 그렇게 대단했던 임방울 명창의 판소리도 시간 속에 완전히 매몰되어 역사에서조차 잊혀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인사들이 국창 임방울선생 기념문화재단을 발족시키고 학술대회와 경연대회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 엄청나게 많은 인사들이 이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크게 고무되기도 한다. 그러나 꼭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무리 거창한 학술대회를 하고 또 판소리 경창대회를 한다고 해도 임방울 선생이 불렀던 그 판소리 가락이 되살아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학술대회나 경연대회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임방울 선생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추모하는 사업은 될 수 있지만 그의 음악을 되살리는 직접적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방울 명창의 판소리 자체를 되살리고 후대로 이어져 가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방울 기념사업을 위하여

판소리라는 예술은 구전 심수로 그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어서 전승계보가 끊어지면 그 예술은 없어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정철호씨를 임방울 후계자로 인정하여 임방울 소리의 대를 잇게 하고 그 소리를 후대로 전승시키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방울 기념사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일반 가정에서는 후손이 없을 때 양자라도 해서 대를 잇은 법인데 임방울 판소리 계보에는 엄연한 적자(정철호)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문제는 행정적으로도 정철호 명인에게 임방울 계통 판소리의 기능보유자라는 인정서 하나만 더 만들어 주면 같은 (제5호)로서 두가지 역할을 하게 하여 모든 문제가 잘 해결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이 일이 이루어져서 지하의 임방울 명창이 소리의 제사를 계속 받아먹을 수 있게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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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방울류 학술 세미나  

「임방울 판소리 적벽가 보존과 전승」에 대한 토론

양종승 (국립박물관 학예연구관)
임방울 판소리의 음악성과 예술적 생애에 대한 논의는 판소리 문화사를 든든하게 만드는 작업임과 동시에 임방울 전승자인 정철호 선생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앞날에 서광을 빛쳐주는 작업이기도 할 것입니다. 현재 임방울류 정철호제 적벽가를 배우고 있는 전승자는 수십명이나 되며 이들은 앞으로도 임방울류 정철호제 적벽가를 이어나갈 연희자들입니다. 따라서 이 자리는 임방울 적벽가의 유일한 전승자로 남아 계시는 정철호 선생님과 정철호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는 젊은 소리꾼들의 밝은 앞날 을 생각해 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토론자는 발표자 논지에 특별한 이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이려 발표자의 연구를 더욱 부추기기 위한 방안으로 몇 가지 의견을 타진하는 것으로서 토론자 소임을 다할 까 합니다.

발표자는 음반자료로 남아있는 임방울 적벽가와 정철호 적벽가를 ①초압 ②군사서름타령 ③자룡활쏘는대목 ④적벽대전에서 새타령 까지 ⑤매복 ⑥군사점고 ⑦화용도등 7개 대목으로 구분하고 이를 덱스트와 소리 장단을 근거로 양자의 동일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초압 대목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방울본에도 있었을 것이지만 공연(음반으로 남긴 자료)에서는 부르지 않았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임방울본에는 없었던 것을 정철호대에 이르러 이를 추가하여 불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였습니다. 다른 대목에서도 임방울 본에는 있는 내용이 정철호본에는 없다거나 또는 정철호본이 좀 더 부연되어져 나타난 다고 하였습니다. 이에따라. 발표자는 정철호본이 스승 입방울본을 완벽하 게 따르지는 않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승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변이 양상이라고 하고 이러한 부분에 대한 확인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전승과정에서 생긴변이 현상은 판소리 연희 특성상 당연한 것이기에 발표자도 토론자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나. 이는 오히려 무형유산의 전승현장에서 생성되어지는 지극히 정당한 현상의 한 면이라고 생각되어 지기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임방울에서 정철호로 이어지는 적벽가 전승의 정통성을 따지는 것이라고 할때는 발표자가 언급한바와 같이 그 속내를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에 대한 방안이 있으시면 언급해 주시길 바랍니다.

판소리는 20세기 초중반 민중문화의 거대한 디딤돌 마냥 민초들의 사랑 을 받으며 맥을 이어 왔습니다. 당시 민중문화로서의 판소리는 일제 식민 지 통지자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유입되어온 외래문화에 저항하고 서구 중 축 의 지배담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이른바 민족문화운동의 한축으로서 민중들에게 널리 향유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판소리 문화는 우리 민중 문화에 비문명적이란는 멍에를 씌었던 지식층의 편협한 문화보기에 서 탈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연희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판소리 논의는 문학. 음악. 연희 등의 틀 안에서만 논하기 보다 는 문화사. 사회구조. 문화정책 등과의 연관선상에서 논의되어야 마탕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발표자가 언급한바와 같이 임방울은 소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일 할 정도로 암울한 격변기 속에서도 고집스레 판소리 외길을 걸으면서 민중문화의 지킴이 역할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임방울의 판소리는 문화 및 사회구조와 정책 등과의 연관선상에서 조명되어 질 때 더욱 값진 결과를 졸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의 문화재호보정책은 전승과 보급 및 국민적 인식전환에 지대한 효과를 거두어 왔으며 이는 정부가 추진해 온 민족문화 되살리기에도 큰 결실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또는 무형문화재 지정 여부에 따라 연희의 정통성이 판단되거나 기,예능 수준을 가늠 질하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술적 가치와 민중문화사적 의미가 큰 임방울의 적벽가는 당연히 문화재로서 조명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는 바입니다. 이에 대한 발표자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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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일정표  

- 일시 : 2008년 12월 19일(금) 오후 2- 5시
- 장소 : 국립민속 박물관 대강당(경북궁내)
- 주최 : 민속박물관. (사)판소리고법보존회

1. 개회식 (14시: 00 - 14: 30)

- 사회 : 양 종승(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 축 사 : 김중채 (임방울국악진흥회 수석부이사장)
- 축 사 : 김종규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 인사말 : 정철호 (임방울판소리 적벽가 전승자)

2. 임방울 판소리 학술세미나 (14: 30 -16: 10)

* 좌장 : 최종민 (동국대 겸임교수)

논문 ⓘ 임방울의 생애
- 발제 : 최동현 (군산대 교수)
- 토론 : 정병헌 (숙명대 교수)

논문 ② 임방울 명창의 음악성
- 발제 : 이보형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 토론 : 배연형 (동국대 문화학술원 연구교수)

논문 ③ 임방울 적벽가의 전승과 보존
- 발제 : 유영대 (고려대 교수)
- 토론 : 양종승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3. 종합토론

* 사회 : 최종민 (동국대 겸임교수)

4. 특별공연

임방울류 - 정철호제 판소리 적벽가
- 소리 : 정철호
- 고수 : 박정철
- 소리 : 박정아
- 고수 : 정철호